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24.07.08 07:53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조회 수 56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때에는 마르코 복음으로 들었는데
오늘은 마태오 복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두 복음의 차이점은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회당장의 딸은
병으로 죽게 된 상황으로 나타나는데
마태오 복음에서 그녀는
이미 죽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마태오 복음은
상황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을 보자면
마태오 복음은 회당장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며
되살아난 딸의 나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것이 중요하지
회당장의 이름이나 딸의 나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특정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언급될 때는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면
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누구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서 나도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청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여기에서
마르코 복음보다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할 수는 있어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달라고 청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도 결국 소녀는 죽게 되지만
처음부터 죽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청원은
조금은 무게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청할 수 있고
저것은 청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분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이야기를 조금 바꾸면서
그 이야기를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혹은 스스로 청하는 것을 구분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3Jul

    연중 14주 토요일-사랑의 운명 공동체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랑의 운명 공동체.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운명이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를 갈라놓거나 떼어놓는 것은 ...
    Date2024.07.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498
    Read More
  2. No Image 13Jul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7.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327
    Read More
  3. No Image 12Jul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의 이 말씀은 소위 말하는 공관 복음 세 군데에 모두 있습니다. 세 복음을 비교했을 때 마태오에만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 박해를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바로 앞 문장에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
    Date2024.07.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45
    Read More
  4. No Image 12Jul

    2024년 7월 12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7.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190
    Read More
  5. No Image 12Jul

    연중 14주 금요일-조심은 하되 걱정은 않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어제와 오늘의 말씀을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평화를 빌어줘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마라! 발의 먼지를 털고 ‘쿨’하게 떠나...
    Date2024.07.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541
    Read More
  6. No Image 11Jul

    연중 14주 목요일-줄 것이 없다면

    오늘 복음은 어제 사도들의 임명에 이어지는 파견 내용입니다. 그리고 파견하시면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오늘 저의 나눔은 한 말씀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을 듣고 내가 뭘 거저 받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
    Date2024.07.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619
    Read More
  7. No Image 11Jul

    2024년 7월 11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7.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5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351 Next ›
/ 135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