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때에는 마르코 복음으로 들었는데
오늘은 마태오 복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두 복음의 차이점은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회당장의 딸은
병으로 죽게 된 상황으로 나타나는데
마태오 복음에서 그녀는
이미 죽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마태오 복음은
상황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을 보자면
마태오 복음은 회당장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며
되살아난 딸의 나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것이 중요하지
회당장의 이름이나 딸의 나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특정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언급될 때는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면
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누구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서 나도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청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여기에서
마르코 복음보다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할 수는 있어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달라고 청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도 결국 소녀는 죽게 되지만
처음부터 죽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청원은
조금은 무게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청할 수 있고
저것은 청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분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이야기를 조금 바꾸면서
그 이야기를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혹은 스스로 청하는 것을 구분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