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며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셨던 것과 똑같습니다.
당신께서 하시던 일을
이제 제자들이 이어서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것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도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파견된 제자들은 이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게 됩니다.
물론 마태오 복음의 끝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파견하십니다.
하지만 파견의 첫 대상은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제한됩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믿고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니지만
메시아에게서 권한을 받아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파견의 사명을 살아가는 데
그것을 원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면
그 삶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거부의 경험보다는
수용의 경험이 더 클 것이라 예상되어
우선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용의 경험은 제자들에게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제자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별 볼 일 없는 나이지만
예수님께 받은 권한 덕분에
예수님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받아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길을 꾸준히 걷는데
충분한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주님의 파견을 살아갑니다.
그 파견을 살아가는 힘은
우리 역시 수용에서 올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힘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