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 말씀은
소위 말하는 공관 복음 세 군데에
모두 있습니다.
세 복음을 비교했을 때
마태오에만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
박해를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바로 앞 문장에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데
이 문장은 박해를 피하라는 말씀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박해를 피하지 않고 거기에서 오는 미움을
끝까지 견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박해는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 미움은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 나의 행동과 상관 없이 이루어지기에
언제 어떻게 박해가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아버지의 영께서 알려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으며
그 상황을 넘어 갈 힘과 지혜도 주시기에
견딜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하라는 말씀은
다른 목적 혹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박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박해를 피하는 것이지만
다른 고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복음을 전해 받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박해를 받으면서 하는 증언이
말로 전해지면서
복음이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직접 파견하시는 방식을
더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움을 견디면서 박해 속에서 한 증언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나
직접 다른 곳에 가서 하는 것이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기에 견디는 것이 더 옳고
피하는 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택에 있어서 그 기준이 복음이 될 때
이것을 선택하던 저것을 선택하던
복음 선포가 중심이 될 때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피하는 상황이
너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의 관점보다는
복음 선포에 집중하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