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7월 15일 월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어째서 평화에 칼이 필요한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 집에 들어갈 때마다 빌어 주라고 하신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천사들이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루카 2,14 참조) 하고 노래한 평화는 어떤 종류의 평화입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면, 왜 모든 예언자가 평화를 기쁜 소식으로 선포한 것입니까? 무엇보다, 질병이 없어졌을 때가 바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암이 제거되었을 때가 바로 평화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수술로만 하늘과 땅이 결합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이런 방법으로만 신채의 건강한 조직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고칠 수 없는 부분은 잘라 내야 합니다. 군대 지휘관은 오직 이런 방식, 곧 반란자들을 제거함으로써만 평화를 유지합니다. 바벨탑에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의 악한 평화가 그들의 선한 불화로 끝났습니다. 그리하여 평화가 섰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8
영성은 깨어남이다
젊은이, 내가 이르노니, 일어나거라(루카 7,14).
하느님은 자신의 본질, 곧 사랑을 위해 우리를 의지한다. 액카르트는 이 주제를 다른 자리에서도 전개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하느님의 생명과 하느님의 존재는 나의 영혼을 의지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은 나를 몹시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기분이 좋으시든 그렇지 않으시든 간에 나를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이 사랑을 없애 버리는 사람은 그분에게서 신성을 없애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진리이신 것만큼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20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7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로마 14-16장 / 갈라 1-3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갈라 1,11-24
바오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경위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