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삶.
주인의 삶은 종의 삶과 다릅니다.
종의 삶을 생각할 때 즉시 떠오르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데도 주인이 하라니까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주인의 삶일까요?
퍼뜩 생각해도 다시 말해서 깊이 생각지 않아도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 좋을 대로’란 우선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 자기중심성입니다.
이런 삶으로는 행위의 주인이 될는지 모르지만 행복의 주인은 못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존중할 것이며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당장 태클이 들어갈 것이고 결국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좋을 대로 사는 것은 실제로 자기가 주인인
삶이 아니고, 행복의 주인이 되는 삶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인의 삶은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삶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삶은 좋을 대로 산다며 실은 욕망에 휘둘리는,
그런 삶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삶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나 해를 입을 때 자주 원수나 이웃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배 아래 넘겨진 그러한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에게서 슬기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인의 삶은 스스로 옳게 식별하고 선택할 줄 아는 삶입니다.
식별의 기준은 늘 자기의 행복이고,
이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누구를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심지어 하느님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삶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의 유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버리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버려라!
부처가 나를 집착하게 하면 부처를 죽여버리고,
불경이 나를 집착하게 하면 불경을 태워버려라!
사실 진정한 나는 우주의 중심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심지어 하느님도 아니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우선인지 스스로 성숙하게 식별하고 선택할 줄 아는 것이 주인의 삶이고,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의 뜻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끝으로 프란치스코의 관련 글을 다시 덧붙입니다.
“모든 형제들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필요성이 생길 때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먹어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필요성이 있을 때는 주님께서 형제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총에 따라,
‘필요성 앞에는 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형제들은 필요한 것을 쓸 수 있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