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무위지위(無爲之爲),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한다는 뜻입니다.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말도 있지요.
요순 임금처럼 임금의 이름을 백성이 모를 정도로 임금이 없는 듯 있는데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통치하는데도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뜻이지요.
오늘 마태오 복음은 주님께서 하시는 구원행위가
무위지치 하시고 무위지위 하시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합니다.
주님은 영을 받아 올바름, 정의를 선포하시는 분인데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아 길거리의 누구에게도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다투는 정의와 소리치는 정의뿐입니다.
나는 정의롭고 너는 불의하다고 소리치며 다투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당이 민생정당이라고 주장하지만,
민생은 팽개치고 그저 주장하는 민생일 뿐입니다.
생색내지 않고 말없이 실천하는 민생은 없습니다.
오히려 부러졌다고 갈대를 아주 작살을 내버리고,
꺼져간다고 심지를 아예 꺼버리는 짓이나 합니다.
기세등등한 사람들 심기는 살피고,
기가 꺾인 이들은 깔아뭉개는 짓이나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세등등한 사람들에게 기가 꺾인 갈대들을 일으켜 세우고,
꺼져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되살리시기에 모든 이가 주님께 희망을 겁니다.
주님의 정의는 이처럼 주장하는 정의가 아니라 묵묵히 실천하는 정의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를 살리는 올바름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다른 측면에서 무위지위를 보겠습니다.
내가 하지 않는데 한다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데 하느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뒤집으면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내가 하지 않는 것이고,
내가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하느님께서 하시게 하는 겁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드러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내가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무식하고 못생긴 당신을 왜 그렇게 따르냐고 맛세오가 물었을 때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자기보다 못나고 죄인인 사람을 발견치 못하셔서
강하고 지혜롭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자기를 뽑으신 것이라고 답하였지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자기에게 주셨던 은총을 다른 강도에게 주셨다면
그 강도는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을 것이라고도 하였지요.
어쨌거나 성령의 사람들이 하는 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내 이름으로 그리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은총 청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