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에 복음사가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올바름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 선포는
다툼도 외침도 없이 이루어진다고 묘사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내가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온 것이 기쁜 소식인데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선포는
사람들이 듣지 못한다고까지 표현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선포를 알아듣고
그에게 희망을 걸게 됩니다.
물론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개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십니다.
하지만 말로 하는 선포보다는
치유나 나쁜 영을 쫓아내시는 것으로
하느님 나라를 직접 보여주십니다.
말로 하신다고 해도
조용 조용한 대화를 통해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지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전적으로 옳다고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좋고
나에게는 하느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들도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과
싸우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앙 방식이나
자신의 신심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인데
왜 하지 않느냐고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자신에게는 그 방식이 맞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 안타까움이
사랑이나 걱정에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요의 모습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다르다는 것을
한 번 쯤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