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7월 21일 연중 16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연중 제 16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많은 군중들을 보시며 가엾이 여기는 자비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목자가 갖는 가장 큰 덕목은 바로 타인의 고통을 보고 가엾이 여기고 함께하는 자비의 마음입니다.
참 목자이신 주님의 자비로운 마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고 자비스런 행동입니다. 자비로움은 모든 악을 끊어 버리는 정신적 경향을 말하며 친절과 관용, 내적 기쁨을 누리도록 영혼을 준비시킵니다.
자비심은 이웃의 불행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입니다. 남에게 베푸는 자선 또한 자비에서 비롯됩니다. 자비는 연민과 용서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연민은 고통과 관계하며 자비는 과오와 관계됩니다. 연민은 증오를 멈추게 해주는 미덕입니다. 연민이 최종적으로 이르는 곳은 자비입니다.
보다 일차적인 충동, 더욱 정감적이고 자연스럽고 즉각적으로 나오는 충동은 연민입니다. 자비는 그에 비해서 숙고가 필요합니다. 연민은 성찰을 전제하지 않는데 대해서 자비는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하찮은 잘못만을 용서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며 용서할 만한 것만을 용서하는 자비는 자비가 아닙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지닌 용서란 증오를 멈추고 복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용서의 미덕이며 용서의 비결이며 용서의 원리입니다. 자비는 잘못이 아니라 원한을, 기억이 아니라 분노를, 싸움이 아니라 증오를 폐기시킵니다. 자비는 사랑이 불가능 할 때 사랑을 대신 해 주거나 아직 사랑에 이르지 못했을 때 사랑이 가능하도록 준비해주는 것입니다. 자비의 가르침은 사랑할 수 없거든 적어도 증오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용서받는 사람보다도 하느님 자비를 더 깊이 체험합니다.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마음이 드러나는 자리는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 가운데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하며 그들의 마음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비는 또한 회개의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의 유언에서 회개생활의 시작을 자비를 베푸는 구체적인 행위로 묘사합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자비는 참된 신앙을 알아보게 하는 기준이며 회개의 첫 걸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자비는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자비의 체험이 있을 때 우리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참된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목자 주님을 바라보며 일상안에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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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7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갈라 4-6장 / 필리 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거룩한 성체에 순종한 스위스의 산
스위스-1873년
아르트-골다우(Arth-Goldau)와 슈비쯔( Schwyz)를 잇고 있는 스위스의 철도열차 길의 양쪽으로, 로스(Ross) 산이 있었고 그 산 중턱에는 목초지가 있었다. 그 곳에는 수많은 암석더미가 깔려 있는데, 이 암석더미가 오래 전인 1806년 9월 2일 저녁 무렵에 이 아름다운 골다우 마을과 457명의 주민들을 매장시켜 버렸던 일이 있었다. 로스산 위에서 흘러내린 바위들이 들판과 목초지, 그리고 농가의 지붕과 가축우리를 유린하듯이 휩쓸면서 협곡으로 굴러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신음했고 전지역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리기(Rigi) 지역 맞은편에 우뚝 솟은 로스산이 아직 잠잠해지지 않았으며 어느 날엔가 또 다시 산사태가 일어나서 새로운 재난을 입힐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1873년 겨울 로스산이 발치께에 놓여 있던 슈타이넨(Steinen) 마을의 뒷쪽 산 중턱에서 지면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마을의 냇물처럼 이 비옥한 땅을 흙더미로 매장시킬 듯이 무너져 내릴 때 이 마을은 죽음의 공포가 극도로 고조되어 있었다.
인간이 어떠한 대비책을 강구하더라도 그러한 자연의 재앙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은 주민들은 오직 하느님께 그들의 믿음을 다하여 모든 것을 의탁했다. 그래서 당시 슈타이넨 마을의 아넨(Annen) 신부는 기도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원행렬을 하면서 본당이 있는 마을을 지나 특히 위험했던 지역에 가서 로스산을 향해 성체를 모신 성광을 들고 십자 성호블 그었다.
그러자 산이 얌전히 순종하여 더 이상 산사태가 나지 않고 잠잠해졌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흙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 요동하던 산은 이제 잠잠하게 멈추었다. 공포에 사로잡혔던 주민들은 안심한 채 다시 그들의 일터로 나갔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의 고향과 가족들이 더 이상 어떠한 산사태로 인해 위협받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