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오늘 축일이 옛날에는 성녀 마르타의 축일이었습니다.
이 말은 옛날에는 마르타의 동생과 오빠는 성인으로 공경받지 못했다는 말이고,
마르타만이 가족들을 대표하는 성녀가 되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면에서 세 분을 성인으로 같이 기념하는 새로운 전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의미도 있고 과거에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것을
이제 제대로 조명하는 의미가 있을 텐데 제 생각에 이것이 더 중요한 의미입니다.
한 가족이 모두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한 가족이 모두 주님을 사랑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 말입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저는 이순희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를 높이 삽니다
부부가 같이 하느님께 나아간 경우이니 말입니다.
사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대단히 훌륭하지만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에게 귀감이 되지요.
그렇지요.
서로 사랑하는 것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 사랑은 갇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에 갇히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의 사랑에 갇히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많은 사람이 자기 사랑에 갇히고,
기껏해야 가족 사랑에 갇혀 더 이상 사랑이 확장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세상 서로 사랑하다가 같이 사랑을 끝내는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이것을 심하게 얘기하면
고양이를 사랑하며 한 생을 살다 가는 것처럼 슬픈 사랑입니다.
인간이 되어서 그래 고양이나 사랑하며 살다가 간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인생입니까?
마찬가지로 신앙인이 되어서 하느님 사랑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신앙생활입니까?
이는 천국에 가려 하지 않고 기껏 이 세상에서 복되게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참으로 슬픈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자주 얘기합니다.
연인들의 풋사랑은 서로를 보지만
부부의 익은 사랑은 같이 한곳을 바라본다고.
그런데 부부의 사랑이 같이 한곳을 바라보긴 하지만
그 한곳이 하느님이 아니라 자식일 수도 있지요.
이번 행진자 중에 딸이 출산하여 첫 손주를 본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딸이 출산하러 가는 날 행진에 참여하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출산하는 딸 옆에 있지 않은 비정한 엄마일 수도 있지만
내가 옆에 있을 테니 잘 갔다가 오라고 한 남편이 있어 자녀도 같이 사랑하고
주님도 같이 사랑하는 것을 동시에 실현한 성숙한 부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튼 교회는 오늘 한 가족의 축일을 통해
한 가족의 거룩한 삶에서 자극도 받고 본도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 프란치스칸에겐 성녀 클라라의 가족이 이 거룩한 가족의 본보기이지요.
세 자매가 클라라의 수녀가 되었고 나중에 어머니까지 수녀가 되었으며
마침내 세 자매가 모두 성녀 또는 복녀가 된 거룩한 가족이니 말입니다.
한 가족이 거룩한 가족이 되는 것은 욕심을 내도 좋을 욕심일 것입니다. 아멘.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