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늘나라에 관한 마지막 비유는 마지막 비유답게 중대한 비유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장하는 상선벌악(償善罰惡)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상 받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 받는다는 내용의.
그런데 이것은 지옥의 실재 문제와도 관련이 있고,
사랑이신 하느님이 인간을 영원히 벌하시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요.
이것은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뜨거운 논쟁 주제이기도 했지요.
당시 성공회 신부가 ‘지옥은 없다.’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주장은 역시 충실한 가톨릭 사제답게 ‘지옥은 있다.’입니다.
그렇다고 그 지옥은 ‘불붙는 지옥’과 같은 그런 지옥이 아닙니다.
천국이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라면
지옥은 정반대로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이지요.
그런데 이 영원한 단절이 하느님의 벌 때문인가?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 천사들을 시켜 악인들 가운데서
악인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질 것이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굳이 지옥이라는 곳을 만들어 놓고
저승사자를 보내 악인을 지옥에 처넣지 않으실 겁니다.
인간이 천당 가고 지옥 가는 것은 하느님의 선택이 아닙니다.
천당과 지옥은 인간의 선택입니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자유로 하느님께 다가갈 수도 있고,
같은 자유로 하느님과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사랑으로 선택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교만으로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거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런 존재가 악령들이고 더러운 영들일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예레미야서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옹기장이와 옹기들로 비유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그런데 옹기장이는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버려버립니다.
“옹기장이는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옹기장이 하느님은 옹기인 우리를 흠 없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흠 없게 만든 옹기에 흠집이 생기는데
그 흠집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하느님이 흠집을 내신 겁니까?
아닙니다. 자해(自害)입니다.
하느님이 원치 않으시는 짓을 자기에게 한 것입니다.
나를 사랑으로 만드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이 사랑으로 만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렇게 자신을 자해하며 하느님 사랑을 영원히 거부하면
그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며,
스스로 영원한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옥에 가지 맙시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