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도
마태오복음은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과
그 시작이 다릅니다.
그것은 복음서 안에서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생긴 차이입니다.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우리의 이야기가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제자들을 둘씩 파견하신 이야기가 가까이 있으며
그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제자들의 휴식을 위해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물러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들으시고 나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물러가시는 모습을 전합니다.
마르코복음도 바로 앞에서 요한의 죽음을 전하지만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물러나는 것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두고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태오복음에서는 그를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요한의 죽음을 접하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을 찾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모습
친척이면서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함께 노력했던 동료의 죽음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이 더 크게 보이는 이유는
이어지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군중의 모습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요한이 죽었다는 것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이 싫으셨을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으셨을 것 같은데도
가엾은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 우리의 약함을
알고 계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적인 모습으로
그 아픔과 약함을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비록 당신께서 곤란한 상황일지라도
우리의 필요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두 모습이 함께 드러난 것이
오늘의 기적으로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도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그것이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우리는 사랑 받는 존재임을
한 번 더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