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제 생각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원죄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중심인 차원과
자기가 공동체의 중심인 차원입니다.
첫째로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자기의 중심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중심에 계셔야 하는데
나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때 하느님은 나에게 장식물처럼 계시고
나의 가장 가장자리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있어 이러하시니 이웃은 어떻겠습니까?
누구를 내 마음에 둔다할지라도 그것은 소유키 위해서고,
사랑으로 그를 내 마음 안에 둘지라도 한 가운데는 역시 내가 있습니다.
둘째로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하느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지 않고
자기가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공동체를 좌지우지하며,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가운데 두고
힘없는 사람들은 가장자리로 밀어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힘 있는 사람에 의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
한 번도 공동체의 중심에 선 적이 없고 늘 주변에만 있던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자기중심적으로 공동체를 생각한다는 면에서,
공동체는 이러해야 한다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는 면에서 마찬가집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고 우리의 원죄라면
주님께서는 그 반대로 우리 인간을 당신 중심에 두시고
사람들이 가장자리로 밀어낸 힘없는 사람들을 한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당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생각하시느라 당신은 당신에게서 잊혀지시고,
우리를 한 가운데 두시기에 당신은 당신에게서 없어지십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공동체의 가장자리로 밀어낸 사람을,
아니 내가 밀어낸 사람을 한 가운데 세우십니다.
당신이 그 한 가운데 계셔야 마땅한데
그 자리를 기꺼이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에게 내어주십니다.
그를 중심으로 세우시는 주님을 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못마땅해 하고,
그래서 당신을 제거할 구실을 찾고 있는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도
주님께서는 밀려난 사람을 한 가운데 세우심으로써
힘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랑이 중심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그라든 사람을 오늘 회당 한 가운데 세우신 것은
힘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사랑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나와 공동체의 중심으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나와 공동체의 중심으로 세워야 함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오늘이 되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