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도 성전 세를 낸다고
대답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 받는다는 것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예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생각을 넘어서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주인의 자녀,
아니 더 나아가 성전의 주인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을 비추어 볼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분,
당신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돌로 된 굳어진 건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사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것도 1년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은 성전 세를 면제 받는다고 말씀하시면
당신이 성전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면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러게 되기에
예수님께서는 성전 세를 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성전임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결국 오늘 두 번째로 예고하시는
수난이 이루어집니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주장하시기 보다는
그들의 뜻을 존중해 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의 뜻이 맞는 것 같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이루어지기에
점점 더 의기 양양해지고
목소리를 더 높입니다.
심지어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는
항상 부활 예고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뜻이 지금은 맞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예수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내가 지금 주장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얻은 그것
그것으로 나는 지금 기뻐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내가 이긴 것 같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고
마냥 기뻐하다가
나중에 불행한 결과,
이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때
그 당황스러움은 어떠할지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때 가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불행한 결과는
내 주장을 하면서
결국 하느님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만족을 위해
지금 당장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느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선택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