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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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마태 18,16)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지 알고 바로잡으라
누가 여러분에게 해를 입혀 여러분이 고통을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끼? 여러분은 오늘 성경 밀씀에서 이마 그 답을 들었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15절)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남에게 해를 입힘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심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형제의 상처를 못 본 척하실 겁니까?
그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그의 곤경을 못 본 척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른 그 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니 누가 우리한테 죄를 짓거든, 단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그를 잘 보살핍시다. 자신의 상처를 잊어 버리는 것은 훌륭힌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상처는 제쳐 놓으십시오.
그러나 형제의 상처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그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그를 바로잡기 위해,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티이르십시오. 그가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시작할지도 모르기 때
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를 여러분이 바로잡으려 하는 그 행동으로 더욱 몰아 붙이는 셈이 됩니다.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리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15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그를 타이르지 않았다면, 그는 파멸의 길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9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루카 21,31),
하느님은 그물이고, 우리는 그 그물 속에 들어 있는 피조물이다. 하느님을 가장 진실하게 아는 사람은 만물 속에서 똑같이 하느님올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피조물과 하느님을 제대로 보려면 그 그물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엑카르트는 사람이 그 그물 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 그물 속에 있음을 의식하고, 이 인식을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넓어져서, 우리의 신성에 대한 자각으로 그물을 가득 채워야 한다.
하느님은 영혼이 넓어지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영혼에게 많은 것을 받을 기회를 준다. 그렇게 해야만 몸소 많은 것을 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넓어짐 혹은 확장이야말로 인간의 자각과 의지의 특징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가 깨달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나 하느님을 발견하고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보다 더 밝고 즐겁고 기쁜 삶은 결코 없다.(220)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8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유다 1장 / 루카 1-4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6절: 청빈운동, 이단과 이단 신문
이단 신문:
인노첸시오 3세 때에 교회의 소송법에서 이단 신문 절차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르면 당국은 어떤 경우에 직무상 죄인이나 범죄자에 대하여 행동을 먼저 취해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당국은 범인이 고소될 때까지 - 고발 소송 - 기다려서는 안되고, 자진하여 또 직무상 - 판사로서의 직권상 - 범인을 색출하여 법정에 인도해야만 하였다. 이단자에 대한 이와 같은 방법의 적용은 1231년에 이단 혐의자를 추적해야 하는 교황청 이단 신문관이 임명되게 하였다. 1224년에 그레고리오 9세와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하여 공동으로 롬바르디아 지방에 이단자법이 반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세속 당국은 주교가 인도한 이단자를 감금하고,
만약 그가 이단을 계속 고집하면 그를 처형해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속권으로의 인도는 필연적으로 처벌을 가져왔다. 만약 인도시에 세속의 권력이 유죄선고자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는 청이 표명되었다면, 그것은 “무서운 형식주의요 순전한 허구”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속의 법정이 그 집행을 거부할 경우에는 그 법정 자체가 이단의 용의자로 기소되었다. 인노첸시오 4세는 1252년에 이단 신문관들에게 필요할 경우에는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리하여 교회사에서 가장 슬픈 장이 시작되었다. 잔인한 고문자의 비인간적인 행위에는 이미 어떠한 한계도 없었다. 많은 무고한 피들을 흘렸고, 과도한 잔인함과 슬픔이 인류 위에 떨어졌다. 이러한 “무서운 제도”가 후에 명백히 망상인 무의미한 마녀 신앙에까지 실행되었을 때, 그것은 최하점에 도달하였다. 한없는 고통이 맹목적인 광신자에 의해 산상의 설교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 자비로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류 위에 초래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깊은 부끄러움과 당황함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