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혼인 관계에 대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 관계가 정말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를 소홀히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다른 관점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선택하신 배우자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더 나아가 내가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는 요즘이기에
어떻게 보면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관계라는 생각은
점점 더 희미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결혼도 내가 선택했기에
이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갑니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고
나는 그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물론 하느님께서 직접 중매를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결정은 우리 각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고 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택도 이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다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맞춘다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을 함께 보면서
더 좋은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뜻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즉 신앙인으로서의 나의 선택은
나만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나와 하느님의 공동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선택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음을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혼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혼인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의 순간입니다.
물론 혼인 말고 다른 중요한 순간들도 많습니다.
그러한 상황들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그것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결정인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고
하느님의 뜻도 물어보게 됩니다.
그렇게 신중하게 선택한만큼
그 결과에 있어서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 때에도
하느님과 함께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이 쉽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택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나 자신을 스스로도 소홀히 대하지 않음을
뜻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내 마음대로의 결정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삶을 꾸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