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릎 꿇은 아돌프 히틀러(2001)
작가 :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halellan 1960~ )
크기 : 101 x 41 x 53 cm (플래티넘 실리콘)
소재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Gughenheim) 미술관
작가는 다른 성미술 작가와는 다른 특이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우선, 이태리인이니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나마 가톨릭 신앙에 대한 체험이 있을 수 있는데 작가의 삶은 전혀 달랐다. 가정적으로 경제젹으로 너무 어려운 처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신앙이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조차 사치스런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이론적 한계 밖의 사람이다.
오직 현실을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며, 그의 이런 처지에서 그는 철저히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삶의 현실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종종 그의 예술에 대한 많은 비난과 경외라는 이중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그의 작품 경향은 종종 예술계의 장난꾸러기로 낙인 찍히기도 했으나, 그의 이런 접근은 상투적인 예술 작품으로 표현되는 작품과는 또 다른 황당함이 아닌 어떤 신선한 감동도 줄 수 있게 되어 많은 호응자들을 얻게 되었다.
주위의 반응이나 인기를 의식하지 않고 척박한 삶의 현실이라는 콩크리트 바닥에서 만난 진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 그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진실을 과감히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통념적인 예술가들이 걷는 길과는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그의 돌출적인 사고 방식과 태도로 다른 예술가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복음적인 관점을 선명히 보이고 있다.
환경적으로 변변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뼈저린 가난을 체험하며 성장하면서 그는 인생을 철학적으로 관조하는 습관을 익히게 되었다. 직업 역시 시체 안치소 직원, 정원사 등 오만 험한 일을 하면서 돈의 비정함과 사회의 밑바닥 현실을 정확히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살기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우연스럽게 가구 디자인을 배우게 되고 여기에 자기의 자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가 느낀 것이 신앙의 주제이던 아니던 작품화 했는데, 그는 “아홉 번째 시간(La Nona Ora, 1999)”라는 작품으로 성미술에 대한 접근을 했고 교회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경건하기로 유명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황의 정장을 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날아온 돌인 운석을 맞아 넘어진 모습이다.
교황은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고 실천하기에 신성시 하는 분이신데 하늘에서 날아온 운석에 맞아 넘어졌다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이해가 그리 쉽지 않는 일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교황이 너무 큰 집단의 지도자로서 하느님 뜻 보다 교회의 체제 유지나, 자신의 뜻을 이루는데 더 큰 비중을 두었기에 하느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이란 해석도 할 수 있기에 그리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무리 작가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제작한 사심없는 표현이라고 해도 정상적인 가톨릭 신자에게는 그리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것과 달리 이 작품은 위와는 전혀 다른 감회를 느끼게 만들며 히틀러라는 근세에 드문 독재자로서 너무나 무고한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을 많이 학살한 인간 악마에 대한 신앙적 평가를 하게 했다는 면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즉, 신앙의 차원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한 선의의 인간이 교회가 분명히 밝히지 못한 악마에 대한 정확한 복음적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특성이다.
교회에서 어느 누구도 히틀러의 행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정확한 그의 악행을 평가하기를 꺼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교회의 가르침 자체가 너무 복합적이어서 용서와 화해 평화와 원수 사랑이라는 복음적 가르침이 합성되고 나면 악인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자체가 비복음적 태도란 생각이 들면서 아예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애둘러 표현한 것이 교회의 태도였다.
작가는 이런 면에서 역사적 현실 앞에서 교회가 항상 외치는 예언자적인 태도로 히틀러의 삶을 조명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정당을 창당하면서 우선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의 표시로 유대인들의 박해를 시작하고 1935년부터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을 박탈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많은 유대인들은 독일은 그들이 태어난 곳이고 많은 헌신을 한 곳이기에 독일을 자기 고국으로 여기던 처지에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1941년부터 오늘 폴란드의 아우스비츠에 유태인들을 학살하기 위한 가스 사형장을 설치하여 유럽의 유태인들을 모두 이곳에 모아 가스실에서 인종 청소를 했다. 인류 역사상 이 세상에 여러 잔인한 학살이 많았으나 아우스비츠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참한 학살이 집행된 적이 없으며 이것은 단순한 학살이 아닌 인종 청소라는 말할 수 없는 잔인한 범죄가 되었다. 히틀러는 당시 유대인들을 약 600만명 살해 했으니 인류 역사상 이런 크고 잔인한 범죄는 없었다.
교회는 주요 메세지가 죄를 피하라는 것이고 또 지은 죄는 참회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아쉬움이라면 약한 사람에게는 더 없이 가혹하고 강하게 이것을 강요하는 반면 악한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죄와 악행를 외면함으로서 이중적 잣대로 세상의 악문제에 접근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의 양심과 지성들은 히틀러의 악마적 행동을 막지 못한 책임의 주요 부분을 교황 비오 12세에게 넘기자,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문서고를 열어 오해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유럽의 양심들과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악몽을 겪은 일부 유대인과 역사학자들은 비오 12세가 나치의 대대적인 박해에 직면한 유대인을 돕는데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해왔다. 반면에 교황청은 비오 12세가 직접 나서면 유대인이 더 큰 곤경에 처할까 두려워 물밑에서 조용히 조력했다는 입장이다.
사실 교황님이 이런 비난을 받는 아중에도 많은 선의의 크리스챤들 특히 수도자들이 유대인들을 숨겨 주고 도망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해 준 것은 너무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의 태도는 참으로 교회 편으로 보나 세상 편으로 보나 시원하면서도 신선한 감동과 지혜를 주고 있다.
교황으로 대변되는 교회의 태도가 어떤 이유로던 어정정한 처지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의 이 작품은 정의의 표현이 어떻게 바로 되어야 하는지 효과적으로 알린 모델로 대단히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의 이 작품은 교회가 하지 못했던 나치에 대한 효과적이며 예언적인 고발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가 하는 악에 대한 고발은 너무도 힘이 없고 형식적인 것으로 끝날 때가 많은 처지에 작가의 작품은 너무 힘있게 히틀러를 고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교회가 지닌 구조상의 허점을 날카롭고 정확히 찌르면서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히틀러는 잘못을 뉘우치는 소년과 같이 무릎 꿇은 자세인데 이것은 교회가 강조하는 참회의 기본적인 자세와 같다. 히틀러를 무릎 꿇린 이 작가는 히틀러에게 말한다.
“네가 지은 죄를 다 뉘우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보속을 해야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지 너는 아느냐” 고 묻는 모습이며 교회는 신자들에게 죄를 뉘우치라는 말을 수 없이 하면서도 히틀러에게 직접 이런 말을 전한 적이 없는 처지에서 작가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처신을 했다는 생각에 쏠리게 만든다.
이 작품은 이 만큼 현대에 있어 교회 수준 보다 더 효과적인 고발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 때문인지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팔렸다. 이 주제는 회화와 조각을 통해 여러 형태로 제작되면서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고 종교적 주제의 작품이 놀랄만한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는 일이 되고 있다.
여러 가지 한계와 제약 때문에 종교가 하지 못했던 가려운 마음을 긁어준 작가의 태도가 많은 이에게 상쾌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 시달림을 당했던 아시아인들에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역시 생각할 면을 제시하고 있다. 온 세상을 잠시 지옥으로 만든 2차 대전의 원흉 3인방은 독일의 히틀러, 이태리의 무솔리니, 일본 군주 히로히토였다. 이 세 명의 악령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온 세상을 큰 비극으로 내어 몰았다.
헌데, 두명은 세계 여론의 심판을 받았다. 히틀러는 독일이 항복 직전 자살했고, 무솔리니는 성난 양심들의 심판으로 타살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아시아의 원흉이었던 일본 왕 히로히토는 일본의 특수한 국민성과 체제 유지를 위해 재판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그전 까지 누리던 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상징적인 일본 왕으로 장수를 누리다 얼마 전 죽었다.
히로히토의 악행은 일본의 우파와 우리나라 신친일파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나라에서 신친일파가 정권을 잡고 있고 현충일에 욱일기를 자기 집앞에 거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건재하는 우리의 풍습이 되고 있다.
친일파 척결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새로 태어나기 위한 필수 통과의례와 같은데 교회에서도 일본의 일부 양심들에 의해 간혹 히로히토의 악행이 고발되기도 하지만 참으로 미미한 수준이고 우파를 꺽기엔 너무 미약하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의 작품처럼 히로히토의 악행을 제시하는 예술가들이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인간 세상을 파괴한 악행에 대한 최고의 고발을 한 작품이기에 여러 나라 미술관에 전시되고 많은 관객들을 모았으며 몇 년전 우리나라에서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헌신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교회가 악을 고발하고 징계하는 메세지 전달에 있어 새로운 방법론은 찾아야 한다는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기원전 185년 로마 제국에서 희극작가로서 활동했던 철학자 테렌시우스는 다음가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기에 어떤 인간적인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으로서 지녀야 할 세상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작가는 이런 관점에서 교회가 교의적으로 침이 마르도록 외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시각적 표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