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어린이에게 축복을 청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꾸짖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왜 꾸짖었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축복 청하는 것이 꾸짖음을 들을 만큼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제자들이 터무니없이 꾸짖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잘못인지.
주님께서 쉬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이중 어떤 하나가 그 이유일 수 있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제자들이 어린이를 업신여겨서 그런 것이 아닌지 추측이 됩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어린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을
도리어 주님께서 꾸짖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제자들은 아직도 세상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힘 있는 사람들만 최고 권력자 가까이 갈 수 있고,
무엇을 갖다 바칠 것이 있는 사람들만 최고 권력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힘없는 사람이나 갖다 바칠 것이 없는 사람은 가까이 갈 수 없겠지요?
달라고만 하고 귀찮게 구는 사람도 가까이 갈 수 없음은 말 하나 마나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그런 건 하느님 나라의 짓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짓이 교회 안에도 있으면 주님은 마찬가지로 꾸짖으실 겁니다.
예를 들어 10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교회 주교들이 교회 안의 힘 있는 이들은 교황을 만나게 하고
그 당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교황을 만나러 오는 것은 막았다면,
교황은 힘없는 “어린이들을 놓아두어라.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라는
오늘 주님 말씀을 가지고 한국교회 주교들을 꾸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라면
세상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찾아오면 결코, 막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환영할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권이 오로지 하느님께 있고,
하느님의 주권 아래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별이 없으며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형제들이기에 차별도 배제도 없는 나라입니다.
마태오복음 23장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같은 마태오복음 25장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였지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신자라면
신자 중에서도 작은 이들인 프란치스칸이라면
어린이나 작은 이들을 환대할 것이고,
인간으로 환대할 뿐 아니라 예수님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의 순교자 중에 황희광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당시 사람들이 상종도 하지 않는 사회 최하층의 백정 출신이신데
배교하라는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배교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당신에게는 두 개의 천국이 있는데 하나는 저 하늘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양반과 백정이 같은 형제라고 하는 이 천주교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는 지금 우리의 교회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환영받는 가난한 이들의 교회인지.
우리 교회마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자기들의 교회인 양 차지하고
가난한 사람, 아쉬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것인데
하느님마저 밀어내고 내가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