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것을 막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보자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여기까지의 모습에서 어린이들은
단지 사람들과 제자들, 즉 어른들의
행동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즉 어린이들이 직접 예수님께 다가왔다던지
그런 어린이들을 제자들이 막았다는 표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야기에서 하나의 배경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표현이 바뀝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을 축복해주십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아직 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복음사가 역시 어린이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쉽게 하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과 직접 관계를 맺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또는 다른 사람이 대변하는 식으로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직접 그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듣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전해 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그 사람의 뜻과 정 반대로 전달되어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관계가 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적고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렇게 상상한 것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이야기에서
어린이들에게 집중하십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도
그들을 막는 제자들도 아닌
어린이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니다.
우리도 우리 주위의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한 사람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배경으로 밀어내는 사람이 없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