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 연중 20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
2024년 8월 18일 연중 20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독서와 복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화답송 시편은 지혜의 참된 의미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이 지혜로 인해 우리 영혼에 나타나는 첫 번째는 주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죄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다 주고 그분 곧 진리의 빛이 우리의 양심 안에서 빛나게 해줍니다.
지혜란 지식보다 체험을 우선으로 하는 탁월한 학식이며 성숙한 신앙심과 하느님의 은총을 전제로 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성과 마음의 순종이 요구됩니다. 지혜의 은사를 얻는 다는 것은 오랜 어둔 밤의 길, 즉 공허와 허무의 도가니를 거친후 도달하게 되는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지혜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은 말입니다. 사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교 경전에도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이야기할 때 자기의 모든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또한 함부로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말해야 할 것과 대답해야 하는 것을 신중히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일을 하든지 조급히 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여 내세우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나 다 분별없이 믿지 않고 또 들은 것이나 자기가 믿는 것을 즉시 다른 사람의 귀에 옮기지 않고 말하는데 있어서 신중합니다.
이런 지혜를 얻기 위해서 먼저 내적 고요와 평안을 지녀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하느님 앞에 머무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게되고 거기서 지혜가 자라납니다. 이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외모와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며 일시적이고 정상적인 것 보다는 진실되고 영원한 세계를 사랑하는 혜안을 낳게 합니다.
보나벤뚜라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목표이며 앎이 생명이 되는 참된 지혜가 되는 다음의 질문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질문들을 묵상하면서 참된 지혜를 얻는 한주간 되시길 빕니다.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이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심으로써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맡기셨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용서하셨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약속하셨는가”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8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5-7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북 바이에른 지방의 에르딩(Erding)에 있는 순례성지 “성혈”
독일-1417년
신자들은 주님의 신호를 알아 차리고는 흥분하여 외쳤다.
“주님께서는 이 땅을 성스럽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곳에 계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그분께 저지른 불경한 짓에 대한 속죄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다가 고귀하신 주님의 성혈을 공경하기 위한 성당을 세우고 싶습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성스러운 성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던 그 자리에 훌륭한 순례교회의 탑이 우뚝 세워졌다. 교황은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많은 대사를 베풀어 주셨다. 에르딩의 성체의 기적은 교황과 주교회의 문서를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우리들은 성스러운 성체성사 앞에서 끊임없이 예수님께 가장 커다란 경외감을 나타낸다. 우리들은 교회에서 성체를 영할 때 올바른 흠숭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 에르딩의 소박한 농부가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 알지 못한 데서 실수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주님께서는 성체에 대한 모독이 하나의 교회를 세움으로써 공개적으로 속죄받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이 없는 영성체는 절대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우리가 성스러운 교회의 충직한 아들이 되고 성스러운 주일미사와 그리고 자주 또는 매일 성체께 나와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는 속죄의 교회로서 착한 에르딩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신 것처럼 언젠가 우리들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