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묻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은
십계명과 신명기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계명들, 즉 율법 조항이
십계명 말고도 613개나 있었기에
그 사람은 어느 조항을 지켜야 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있게
자신이 그런 것들을 다 지켜 왔다고 말합니다.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부분은 전부 다 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다 신학에 따라 모든 것을 했는데도
왜 아직 구원을 얻지 못했는지
구원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지
반문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하느님과 함께할 때
하느님께 의지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재산이 많았습니다.
즉 이 사람은 자신의 재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 재산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 조항을 다 지켜 왔다는 것으로
이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으로
온전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자체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나의 노력만으로'라는 것과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은 떠나갑니다.
나의 노력으로 맺은 결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얼마나 고생하며 이룬 것인데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은
그 열매가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공동 작업이 아니라
내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안타까운 것은
그것으로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단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에
그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모르는 단 한 가지는
계명의 어떤 조항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일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구원은 어떤 것인지
신앙 안에서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