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에게 선택 장애 또는 결정 장애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만 해도 나이 먹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고,
결혼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늦게 떠밀려 결정하는 사람 수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즘 젊은이만이 아닙니다.
옛날에도 젊은이들은 선택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늙은이보다 선택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젊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고
뒤집어 말하면 늙을수록 선택의 폭이 좁기에
늙을수록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자기의 선택에 안주하곤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은 아직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지요.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능력에 따라 그리고 자기 욕망에 따라
하나하나 선택지를 좁혀가게 되고 그래서 선택지가 좁아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젊을수록 능력도 많고 욕망도 많기에
선택지가 많고 그만큼 선택하기 어려웠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욕망도 줄어지면서 선택지가 좁아지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얼마간 먹은 지금의 제게 좋은 것은
이제 거의 모든 것이 정해졌고 선택의 고민이 별로 없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갈수록 죽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고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긴 한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선택에 안심하고 안주합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안주하기에 새롭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오늘 또 그리고 새롭게 선택해야 하는데
1년 전에 또는 십 년 전에 선택해놓고 새롭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연인이었을 때나 신혼이었을 때는 사랑이 매일 새롭고
매일 뜨겁게 사랑 고백을 했는데 내 사람이 되고 십 년이 지나자
이제는 더 이상 가슴이 뛰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성무일도 초대송 때 부르는 시편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지요.
매일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출전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말입니다.
옛날 은나라 탕왕이 매일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이 글이 적힌 세숫대야로 매일 세수를 했다고 하지요.
오늘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렇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며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과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정답은 나와 있는데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