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시합니다.
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이 지금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게 말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예수님을 좋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이야기의 끝에 가서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예수님께 대한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모두가 예수님을 좋게 말했다고 전하고
또 한 번은 모두가 예수님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을
전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게 보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이 순식간에
그것도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것이 그들의 본래 마음이었을까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반응의 일차적인 책임은
예수님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두 번 다 예언자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는 예언자의 말이며
다른 하나는 예언자의 삶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역할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그것을 듣는 사람들 각자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즉 앞부분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좋게 들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좋게 말합니다.
그러나 뒷부분에서는
자신들의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하기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즉 어느 것이 그들의 본래 마음이었을까 라기 보다
둘 다 그들의 마음은 맞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을 좋게 말하고
자신들에게 달콤하게 들리는 것만 듣고 싶지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어도
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없애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 보다는
내 방식대로 듣기가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온전히 객관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불편한 말이라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그를 비판하고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그 말을 불편하게 듣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상대방을 내 입맛에 따라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