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두 부류의 인간을 얘기합니다.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을.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은 보통 이렇게 구분합니다.
현세적인 인간은 말 그대로 현세를 지향하고,
영적인 인간은 현세를 초월하여 저 위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현세를 삽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현세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마땅히 현세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현세를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예를 들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처자식 먹여 살리는 데 소홀히 하면서
온종일 기도하는 사람을 우리는 현실도피자나 건달이나 한량이라고 하고,
재산을 몽땅 교회에 갖다 바치고 가족을 팽개친 사람을 광신도라고 하지,
그런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집착과 추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이 있는데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이상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상에 매달려있으며 현실은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층에 있는데 100층을 보며 자기는 100층에 있어야 한다고
이렇게 안달만 하고 있으면 이것은 집착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1층에 있음을 인정하고 차근차근 그러니까
한 계단 한 계단 100층을 향해 오르면 그것은 추구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집착하여 이상은 추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현실을 열심히 살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정도 얘기하면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의 차이점이 나왔습니다.
영적인 인간은 현세를 열심히 살지만 현세에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고,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고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갑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듯 ‘땅에서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세적 인간은 하늘은 안 보고 땅만 보는 사람이겠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다가 보니 하늘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바오로 사도가 영적인 인간이라고 함은
성령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현세적 인간은 그 반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오늘 이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하늘도 못 보고 사는 나는 아닌지.
아니, 의도적으로 하늘을 안 보고 사는 나,
그러니까 일부러 하늘을 외면하고 사는 나는 아닌지.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심을 극구 거부합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지
자기의 주님이 아니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러니 주님의 오심은 자기에게 멸망일 뿐이니
당신이 아무리 하느님의 아들이어도 제발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니,
주님께서 나를 멸망시키러 오셨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튼 더러운 영은 더럽게 현세를 집착하는 영입니다.
혹시 성령이 아니라 이 영이 내게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