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요즘 우리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님은 물론
통치도 아니고 그저 오기 부림이요 깔아뭉갬이요 자기가 다 옳다입니다.
과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 말이 권력에 굴복하거나
빌붙지 않고 오직 법대로 하겠다는 말로 들리어 좋게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는 교만일 뿐이고,
법대로 하겠다는 것도 남은 법대로 하고 자기는 예외인 법대로이며,
그래서 결국 자기 마음대로일 뿐입니다.
왜 이럴까 생각하면
옛날 제가 오래 양성 책임을 맡다 보니 훈장 기질이 몸에 뱄던 것처럼
우리 대통령도 검사 기질이 몸에 배어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기는 단죄하는 자이지 단죄받을 자가 아니라는 의식이 몸에 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가 누구에게 또는 어디서 심판받건
그것이 자기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런 맥락인가요?
이것이 사람들의 심판을 무시하고 거부한다는 뜻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그럴 리 없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는 잘못이 없음을 안다는 말의 뜻도 자신이 무죄라는 것이 아니지요.
앞뒤 말을 연결하여 볼 때 이것은 오직 하느님의 심판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하느님 심판에 자기도 남도 맡기겠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심판하건 하느님의 심판이 중요하고,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에 자기가 앞질러 자기를 심판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자기가 앞질러 심판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판단, 단죄, 심판 이런 것들은 우리가 조심하고 삼가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판단의 경우 올바른 판단은 사랑에 있어서 필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병의 경우, 육신의 병이건 마음의 병이건 고쳐주기 위해서는
판단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잘 판단해야겠지요.
문제는 잘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에 조심하거나 삼가야 하고,
특히 단죄나 심판은 더더욱 조심하거나 삼가야 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단죄나 심판의 권한은 하느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면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할 수 있으며,
둘째는 내가 나를 앞질러 심판하거나 쓸데없이 자책하지 않을 수 있고,
셋째는 남을 함부로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교만의 죄도 피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 앞에 겸손하면 함부로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하느님보다 앞질러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랑보다 단죄나 심판이 앞서지 않을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