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이나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다른 공관 복음에도 있는데
마지막 구절은
루카 복음에만 있습니다.
'묵은 포도주'에 관한 구절입니다.
옛 것과 새것을 굳이 구분하자면
예수님 이전과 이후로 말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묵은 포도주는
예수님 이전의 관습을 가리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옛 관습에 익숙한 사람은
새로운 방식을 원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불편하게 느낍니다.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새로운 것에 적응할 노력을 투자할만큼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굳이 애를 써 가면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보다는
익숙한 옛 방식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이가 들수록 힘이 줄어들다보니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점점 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연한 모습이고
그래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변화를 원하고
그것에 적응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며
각자의 선택입니다.
바뀌고 싶은 사람은 새 방식을 택하고
그것이 힘들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은
옛 방식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에 머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으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옛 것과 새 것이 섞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은 옛 것대로
새 것은 새 것대로
각자 있으면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즉 각자의 방식을 인정해 주면서
나의 방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내 방식에 대한 강요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오늘 복음의 시작 부분에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당신들과 비슷한 요한의 제자들도 하는데
왜 당신네들만 유독 튀는 행동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즉 자기네 방식만 옳으며
예수님의 방식은 틀리다는 것입니다.
나는 상대방의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나는 나의 방식에 온전히 만족하면서
그 방식에 머무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방식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 불만을
나와 다른 이에게 터뜨리지는 않는지
되돌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