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가 주님께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사랑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무엇을 할 때나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제일 중요한 것을 기준으로 무엇을 하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 아니 저의 삶을 보면
아주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이나 삶을 그르치지 않고
잘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잘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가치가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법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여서도 안 됩니다.
생명과 사랑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심지어는 주일 미사보다도 더 나아가서 나의 하느님보다도 중요합니다.
과거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곤 했는데
그때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지 하늘의 참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 우리가 죽여야 할 것은 하느님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불가에서 부처가 집착을 하게 하면 부처를 죽이고,
법경이 집착을 하게 하면 법경을 태워버리라고 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럴 정도로 우선순위가 잘 정립되어 있어야 하지만
가치 정립이 머릿속에서만 잘 되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뼛속까지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의식화에 이어 무의식화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계명이 제일 중요함을 늘 의식하며 살다가 보면
차츰 의식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늘 사랑을 중심으로 판단도 하고 행위도 하는 것입니다.
의식의 무의식화 차원에서 저는 아직 의식하는 단계이고,
머리와 뼈 사이에서 아직 뼈까지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제 있었던 것에 대입하면 짜증과 사랑 사이입니다.
어제는 수녀원 미사를 마치고 동포 미사를 봉헌하러
센터에 가기 전 식당을 들렀습니다.
식당 안팎이 주말 사이에 난장판 수준이었고,
센터에 올라가니 거기도 정리 정돈이 안 되어 심란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은 없고 이용하는 사람만 있다는 짜증이 올라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고 그래서 늘 제가 정돈해왔는데 어제는 정리하면서
짜증이 올라온 것이고 짜증이 있는 상태에서 짜증 내지 말아야지
그래도 사랑해야지 하며 오시는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이럴 때 저처럼 이렇게 애매한 또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지 말고
얼른 사랑과 정리 정돈 중에 ‘뭐가 중헌디’ 하며 빨리 감정 정리해야 합니다.
사실 정작 정리해야 하고 빨리 정리해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뭐가 중헌디’ 물으십니다.
안식일이 중하냐? 사람이 중하냐?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리고 이 한 말씀으로 온갖 갑론을박을 중단시키십니다.
아주 명쾌하고 통쾌합니다. 쾌도난마(快刀亂麻)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