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봅니다.
그 눈빛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지 어기는지
감사하는 눈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회당 안의 분위기는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 냉랭함을 깨시듯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부르십니다.
모든 사람의 눈을 그에게 집중시키십니다.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숨겨 왔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마음을 들킨 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거기에서
예수님과 안식일 규정을 가지고
싸웠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일 규정을 지키려 하는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불만만 키워가는 것보다는
직접 대화하면서 서로의 접점을 찾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은 그들은
예수님도 당신의 주장을 고집하실 것이고
그래서 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같은 것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 다른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대화보다는 강요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강요하기 위해 힘을 사용합니다.
만약 내가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내 생각을 표현하기보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서
공격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킵니다.
이것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는 자기보다 더 센 사람을 만나면
무너질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행복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 방식만 고집하고 싶지만
한 발 양보한다는 것은
결국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