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해 주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던 중 갑자기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칼을 휘두르면
정당방위 차원에서 제가 그를 실제로 죽일까? 아니 죽일 수 있을까?
지금 생각은 피하거나 방어는 하겠지만
제가 살기 위해서 그를 죽이지는 못할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죽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경우 제게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저를 죽이려고 하면
제가 살기 위해 그 아들을 제가 죽일 수 있을까요?
생면부지의 사람도 죽이지 못하는데 제가 제 아들을?
아들을 살인자 만들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막을지라도
나 살기 위해 아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고 칼로 찌른 아들 보며
경찰이 오기 전에 어서 도망가라고 현장에서 피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저 살기 위해 아들을 죽인다면
저는 아버지도 아니고 저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본래 원수이기 때문에 원수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들도 원수가 되고
사랑이 있으면 원수도 원수가 아니고 아들이 됩니다.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옛날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지요.
여의도 광장이 있을 때 한 젊은이가 차를 광장으로 몰아
그곳에 놀러 왔던 여러 사람을 죽게 했는데 손녀를 잃은
할머니가 교도소에 있는 그 젊은이를 찾아가 용서해주고,
세례도 주고 마침내 아들로 삼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다시 말합니다.
본래 원수가 있어서 그가 내게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사랑이 없어서 그가 내게 원수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없을수록 내게는 원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고,
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불행 선언과 연결하면
사랑 없는 사람이 불행하고 원수도 많은 법입니다.
왜냐면 원수란 그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에 원수인데
앞서 봤듯이 내게 사랑이 없을 때 그는 원수가 되고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랑이 넘치면 원수는 없고 행복합니다.
왼뺨 맞을 때 오른뺨도 맞아줄 수 있는 사람이
뺨 한 대로 원수가 되고 불행해지겠습니까?
한 대도 안 맞으려는 사람 그래서 말 한마디에 존재가 휘청일 정도로
타격이 큰사람이 말 한마디에도 불행해지고 때린 그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 탓,
불행 탓,
너에게 돌리지 않고 나에게 돌려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