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현양하면서 살지는 않는.
이것이 오늘 이 축일을 지내며 묵상하고 제가 여러분과 나누려는 주제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은 어제의 일이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한 교구 신부님과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하는데
어제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그 신부님의 감탄에 저도 같이 감탄을 연발하면서
뭔가 허무함이랄까 공허함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대단한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저는 이렇게 저를 위안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프란치스코를 사랑한다.
나는 프란치스코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비록 앞줄에서 프란치스코를 따르진 못할지라도 따르고 있다.
사실 이렇게라도 프란치스코를 따른다면 이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적어도 악마를 따르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참 묘하다고 할까 교묘하다고 할까.
저의 겸손이기도 하지만 합리화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어떤 때는 겸손으로 기울다가 어떤 때는 합리화로 기운다는 말이고,
그래서 이런 것이 인간이지, 하다가도 이래선 안 되지, 하곤 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높이 찬양하면서도 잘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길은 주님만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따라가긴 하지만 따랄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
이런 식입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축일을 지내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임을 현양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승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으시다면 그것이 패배이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헛수고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명백한 승리입니다.
어떻게 죽음으로 죽음을 이깁니까?
제 생각에 치달으면 이깁니다.
죽음 끝까지 가면 이깁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깁니다.
둘째로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임을 현양합니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을 능력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은 사랑으로만 견딜 수 있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곧 사랑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라야 참사랑이고,
참사랑이라야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묵상하고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