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연중 24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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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연중 24주일
고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초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참된 나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겸허한 질문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판단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사람들은 ‘자기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히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도덕과 선행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고 착하고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장식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신앙인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다른이들의 판단에 좌우되면 자신의 모든 삶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행복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름다움을 바라다 보아야 합니다.
푀멘 교부가 어느 날 요셉 교부에게 “수도자가 되는 길을 일러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요셉 교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나 저 위에서 안식을 누리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묵상하고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무엇보다도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누구이시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완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어 줍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참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며 다른 이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판단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표지입니다. 자신의 죄를 겸허히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혼의 평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게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으며 좀더 활동적이 되고 숨겨진 보물인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스스로 덮어쓴 가면들을 부수어 그 안에 있는 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버리라’는 의미는 자기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대단한 사람’이라든가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말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언제나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기 위한 완전한 자아포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실 뿐이다”는 바로 이러한 겸허한 대답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닫고 일상에서 실천으로 드러나기를 오늘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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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9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8,9-17.28-30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성 파스칼 바이론 (Pascal Baylon)
---성스러운 성체성사의 소년목동---
스페인 : 1540-1592년
때때로 파스칼은 사제들을 따라서 도시와 시골로 선교여행을 다녔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거리와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들 때면 선교사들은 자주 파스칼에게 뭔가 신앙심을 불러 일으킬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 그 옛날에 단순했던 이 목동은 소박한 웅변술과 사랑으로써 성스러운 성체를 모신 제단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듣고 회개했다.
파스칼 수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주 고해하고 성찬에 참여하도록 충고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곧 우리들을 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위해, 그리고 미사성제와 영성체를 통해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해 주시기 위해 늘 감실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종종 이 성인 파스칼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깊이 생각하면서 성체를 모신 감실 앞에서 밤을 새우곤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예감하고 있었다. 파스칼리스 바이론은 1592년 5월 17일 성신강림절 날에 임종했다. 수도원 성당에서 그를 위한 미사가 접전되는 동안 그의 시신이 관대에 얹혀지고 있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의 시신이 성체를 축성하는 동안에 생기가 돋아나더니 마지막 다정한 눈길로 성체에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성 파스칼은 모든 성찬식에 참례한 신자들의 수호자가 되었다.(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