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으면.
첫째 성령의 언어도 요란한 징이거나 소란한 꽹과리이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물놀이에서 징이나 꽹과리는 대단한 악기이고 중요한 악기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시끄러움뿐일 때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왜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까?
그것은 앞서 봤듯이 코린토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없이
성령에 취해 방언하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비판하면서
아무리 성령의 은사로 방언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소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방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타나고 일치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둘째로 아무리 영적 능력과 덕이 있어도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동양에서는 재승덕(才勝德)한 사람을 낮추봅니다.
재주는 많은데 덕이 없는 사람 말입니다.
머리는 좋은데 그것을 나쁜 데 쓰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신학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꼴입니다.
사실 프란치스코가 권고 5번에서 얘기하듯
더러운 영이나 악령도 영적인 능력이 있고,
천상 신비와 세상 지식을 많이 알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사랑이 없지요.
악라는 능력은 대단하지만 사랑이 없는 존재의 대표이고
마찬가지로 영적 능력이나 지식이 많은데 사랑이 없으면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넘어 악마적인 존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셋째로 아무리 선행을 하고 사랑 실천을 해도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는 오늘 아리송한 말을 합니다.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심지어 내 몸까지 넘겨주는 것은
대단한 사랑 행위인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고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말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재산 나눔과 자기 내어줌은 분명 그에게는 사랑을 실천한 것이지만
사랑이 없이 실천한 그런 행위가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사랑 행위인 것 같지만 속으로는 사랑이 아닌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재난이 발생했을 때 T.V에 나와 성금을 내는데
자기 선행을 자랑하기 위해 위선적으로 내놓는 경우 말입니다.
이런 위선적인 행위는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처럼 남 좋은 일만 하는 것이고,
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고 내 행복과 구원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은 너 또는 그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그러기에 사랑이 없으면 남의 불행이 아니라 자기 불행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지만 실제로는 사랑 없이 살아갑니다.
사랑이 없으면 너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불행임을 뼛속까지 알아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