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5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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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루카 9,3-5)
몸에 관한 일을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자기 먹을 양식마저도 걱정하지 않을 만큼 속세의 온갖 염려와 세상 일이 요구하는 노역에서 자유로워지기 바라셨습니다.
생필품인 양식을 얻을 걱정도 하지 말기 바라셨지요. 이런 것조차 지니지 말라고 가르치는 분이시니 재물에 대한 애착과 더 가지려는 욕망을 철저하게 잘라 버리셨음은 물론입니다. 그들의 영과, 그러니까 그들의 왕관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데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양식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분은 제자들을 철저히 알몸으로 만드셨습니다. 제자들이 육신에 대한 쓸데없는 염려로 마음이 산만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는 시편 말씀을 상기시키시듯, 먹을 것 걱정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두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10 하느님은 기뻐하고, 고난을 겪고, 복을 주고, 위로하신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이사 49,13).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요한 8,12)
베스터만은 영혼이 삶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으로 묘사한다. 베스터만이 영혼에 대하여 그린 그림은 앞에서 언급한 10개의 설교에서, 특히 마지막 세 편의 설교에서 엑카르트가 그리고 있는 그림과 유사하다. 두 신학자 모두 복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찬양의 능력과 위로의 행위가 사방으로 뻗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창조 에너지의 흐름에는 거룩하지 않은 것, 성스럽지 않은 것. 적대적인 것이 없다. 오감 역시 이러한 밖으로 흘러 나옴과 안으로 흘러듦에 참여한다. 창조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복도 밖으로 흐르되 안에 머문다. 우리는 가장 내밀한 핵, 영혼의 하녀, 신적인 불꽃 역시 모든 피조물에게 볼을 댕기는 복의 햇불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일 속에서 만물을 사랑한다. ‘만물’ 속에는 영혼이 들어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영을 “소용돌이" “회오리”로 묘사하는 액카르트는 우리 정신의 심층이야말로 풍성한 복의 뿔*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이 세계 - 이것 역시 영혼이다 - 로부터
영혼의 가장 내밀한 불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복을 받았다. 우리의 영적 여정은 풍요의 뿔인 소용돌이나 회오리의 가장 내밀한 심층으로 가라앉는 여정이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의 눈에 익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것 가장 내밀한 곳에 있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과 신적인 모든 것의 본래적인 특징이다.”(245)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9월 4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루카 22-24장 / 1코린 1-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8절: 신학과 대학
중세 초기에는 성서신학을 고대 그리스도교의 교부학의 정신에서 전승하고 계속 장려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런데 11세기 교회생활의 심화는 12∼ 13세기에 신학사상의 더 광범위한 분화로 이끌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교황의 지도하에서 하나의 통일체로 합생하면 할수록, 민족들의 정신적인 교류도 그만큼 더 활발해졌다. 사상의 교류는 전승된 것을 다방면으로 연구하도록 자극하였다. 십자군에 의한 세계상의 확대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학문활동의 중심은 수도원으로부터 새로 탄생하는 대학으로 옮아갔다.
스콜라학과 그 대표자들:
베네딕토 회원인 도이츠의 루프레히트(+1135)는 아직 엣 전통 상태에 서 있었다. 그러나 투르의 배렌가르( +1088)는 벌써 고유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성체론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에 이론을 제기하였다. 즉. 빵과 포도주는 상징에 불과하고, 그것들은 축성에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초자연적 힘만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1079년에 로마에서 거부되었을 때, 그는 굴복하였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1215년에 미사에서의 축성이 참된 본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결정하였고, 이를 위하여 “실체 변화” 라는 표현을 만들었다
캔터베리의 안셀모(+1109)는 “스콜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사상을 이용하여 전 신앙 유산을 오성으로 이해하여 새로 얻으려 하였다 신앙은 지성에 의하여 뒷받침될 수 있다. 아니 신앙은 바로 지성을 요구한다. 예컨대 신의 존재는 성서를 통하여 계
시에서 증명 될 뿐만 아니라, 오성을 통하여 피조물에서도 인식 될 수 있다.
그는 소위 존재론적인 신의 존재 증명을 도입하였다. 여기서 벌써 ’‘신앙과 이성” ‘ “계시와 자연적 인식”의 문제가 암시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에 있어서도 고유한 길을 걸었다.(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