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7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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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루카 9,20)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신앙고백이다
다른 사도들도 일고 있었지만, 베드로 사도가 대표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처럼 그분의 본성과 이름을 함께 고백한 그는 모든 덕을 두루 갖춘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고,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만을 고백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하느님의 나심에 대해 따져 묻지 않습니까? 우리는 또한 그분께서 언제 어떻게 태어나셨으며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인간의 사고라는 부실한 도구로 자세히 알아내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물음은 믿음을 북돋기보다는 걸림돌임을 알았기에,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님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아드님에게 주셨으므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요한 3,35 참조).
-암브로시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한 귀족이 먼 낯선 나라로 갔다가 더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루카 19,12 참조)는 구절을 접하게 됩니다. 복음서의 또 다른 구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게 됩나다. “나를 따르지 않고”, 자기를 여의지 않고, 자기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 놓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 자야말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무를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전부를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하느넘의 뜻에 완전히 굴복시키고, 우리의 뜻을 항상 하느님의 뜻 안에 두고,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난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참된 자기에게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선 자체와 선한 것들은 영혼에게 안식을 주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내게 아무 뜻도 없이 무언가를 주신다면, 나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뜻하셔서 내게 무언가를 주신다면, 그것이 제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는 그것에 만족하겠습니다.(248)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는 서방 교회 교부들 중에서 유일하게, 뛰어난 천재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사람이다. 큰 강이 수많은 작은 지류들을 받아들이듯이 그는 자기 안에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들이 추구하고 가르친 바와 같이 분명하고 명확한 인식과 절대자와의 신비적 일치를 추구했고,육체와 물질을 경시한 마니케이즘의 어둡고 부정적인 비관주의를 추구하기도 했으나,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은총으로 충만한 하느님께 대한 복음을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노에게서는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교부를 공부하는 사람은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서방 그리스도교의 내적 요소들을 모두 살펴보게 된다. 니체는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읽고 난 뒤 자신의 친구 오버베크(Overbeck)에게 “나는 그리스도교의 뱃속을 들여다보았네”라는 글을 써 보냈다. 그의 이 판단은 그리스도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서방세계 전체에 해당되는 말이다.
아우구스티노는 354년 11월 13일에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수크 아라스라고 불리는 도시인 타가스테의 평범한 소시민 가정으로 태언났다. 당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었고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의 아머지 파트리치오는 아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것이 없다. 그러나 열성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겼는가에 대해서는 고백록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가 어머니와 가진 외적 관계에 따라 그리스도교와의 관계가 결정될 정도였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멀어지면 그리스도교 신앙과도 멀어졌고, 깊은 관계에 들어가연 그만큼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관계도 깊어졌던 것이다(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