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30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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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6-48)
단순함과 순수함의 본보기
주님께서는 아이의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어린이를 세우셨을까요? 그분은 어린이를 순수함과 겸손함의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어린이는 속이려는 마음이 없고 순수합니다. 생각이 단순하지요. 어린이는 높은 지위를 탐하지 않고,남보다 높아지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함과 순수함의 본보기로 어린이를 데려다가 제자들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 아이를 실례로 삼으시어, 아이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이들만이 당신 곁에 서 있을 자격이 있고, 당신 발자취를 따라 결을 만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태양은 하느님과 같습니다. 태양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들이 있습니다. 태양의 가장 높은 부분은 겸손이라는 가장 낮은 심연에 응답합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께 구걸할 필요도 없고, 청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은 신성은 겸손이라는 심연 이외의 모든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과 하느님은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강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처럼 모든 천사와 성인들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차지합니다. 하느님과 겸손한 사람은 완전히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랍니다. 하느님이 하나의 생명이자 하나의 존재이듯이, 겸손한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졌다면, 하느님도 어쩔수 없이 그와 한패가 되어 지옥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지옥마저 하늘나라와 같을 것입니다.(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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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1.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떼이야르 드 샤르뎅
존재가 발원한 샘, 그것은 불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불이 땅덩이 깊숙이에서 솟아오른다는 착각에 붙들려, 생명의 빛나는 궤적을 따라 그 불길이 댕져진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자비로이 저희의 이 생각이 거짓이요 착각임을 알게 해 주시고, 당신을 발견하려면 저희가 이 착각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태초에 지성과 사랑을 갖추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태초에〈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은 물질 세계에 존재하게 되는 것들을 다 지배하고, 그것들에 꼴을 갖추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초에 차가움이나 어두움이 아니라 〈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속에서 빛이 서서히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빛〉이 있어서, 끈질기게 그러나 어김없이 저희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저희로 말하면, 저희 자신은 어두움이요 허공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한 중심 영역의 바탕이시며 그것을 와해되지 않게 잡아 두고 지속시키는 분이십니다.
시간의 흐름도 공간도 없는 이 중심 영역에서 우주는 솟아 나오고 마지막 완성을 향해 성장해 갑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저희 눈에 아찔할 만큼 거대해 보이는 한계선마저 뛰어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입니다. 어디에나 존재들만이 있습니다. 창조물의 붕괴와 그 원자들의 충돌 이외에는, 어디에나 존재밖에 없습니다.
타오르는 영, 위격적이고 본원적인 불, 합일의 실제적 지향점, 범신론자들이 꿈꾸는 멸아적 융합에 비해 이 실체야말로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사랑스럽고 바람직합니다. 그러하오니 영이시여, 불이시여, 다시 한번 내려오시어 새로 만들어진 이 가냘픈 물질 덩어리에 혼을 불어넣어 주소서. 세상은 오늘 이 새로운 피조물로 새 단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희가 아주 작은 일에서마저 당신께서 하실 일에 참견하거나 미리 내다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께서만 시작하실 수 있으십니다. 저의 기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저의 기도야말로 그것을 마음에서 솟아나게 해 주시는 분은 당신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