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타락 천사 (The Fallen Angle : 1847)
작가 :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
크기 : 유화 197 x 121cm
소재지 : 프랑스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Musée Fabre)
천사나 악마, 마귀 같은 단어는 이제 종교적 차원을 벗어나 일상 삶에서도 심심찮게 통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오늘날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마음으로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을 두고 기부 천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그럴 사람이 아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악의 유혹에 빠져 온갖 잔재주를 다 부리며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훨씬 벗어나 대단한 악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생각, 즉 자연스럽게 그 인간 배후에는 악마의 조종이 없이는 저런 짓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요즘 지휘관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생명을 잃은 어떤 군인을 재판하는 것을 통해 드러나는 악을 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으로 악한 것이란 판단 이전 참으로 오늘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삶을 힘들게 만드는 악마가 지도층 인사들을 통해 역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악마가 소위 인간 사회의 흉악범만이 아닌 번드레한 말을 계속 사용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나 드물게는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이런 악마의 사주를 받은 것 같은 인간을 간혹 볼 수 있다.
이제 악마나 악의 문제는 성서나 종교 경전에 나타나는 문제만이 아니라 심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의 말씀에 드러나는 악마의 존재로 악마의 존재성을 증명하나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악인의 모습에서 이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닌 악마와 접선된 상태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악마의 조종을 받는 존재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악의 존재성에 대한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고 궁색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당신은 전능하신 분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악의 무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하느님의 선성의 관점만으로는 악마의 존재성이 설명이 되지 않기에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심하던 교회는 먼저 인간 사회에 만연한 악은 선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 상태라는 것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즉, 선이 완성되는 과정에서의 부족 상태가 바로 악이니 우리가 악인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할수 없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악의 실체이다. 선의 결핍 상태가 아닌 악이 충만한 상태 즉, 인간적인 여러 결핍이나 상처의 영향으로 생기는 부작용으로서의 악이 아니라 악의 진원지로서의 악마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성서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의 기원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천사의 존재가 하느님을 배신함으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악마라는 명칭인 루치펠은(Lucifer)는 천사의 이름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자”라는 것에서 연유되었음이라는데서 악마의 존재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악마의 존재성을 이해시키는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오는 이론으로서 악마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증명이 힘들어지는 것처럼 종교가 설명하는 악마의 존재성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악마의 존재성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종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동으로 이용한 것은 아주 무섭고 흉측한 형상으로 악마를 묘사하는 것인데, 이것은 악마의 속성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이런 형상이 존재하지 않으니 더 종교가 제시하는 악마의 존재성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심리학의 발달은 바로 종교적인 차원에서 가르치는 악마가 아닌 인간 심층의 연구로부터 어떤 인간에게서 발견되고 있는 악마성을 발견하고 이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닌 인간 삶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해 생각해서 하는 문제로 제시하면서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제시함으로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이고 있다.
스캇트 펙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 삶에서 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여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심리학자로서 그는 저서 “거짓의 사람들”(People of the lie)라는 저서에서 심리학적인 임상 체험에 의한 악마성을 발견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이 저서에서 악은 통념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사회 부적응자로서 범죄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성인이나 지도적인 처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발견되는 악마의 작용으로 밖에 여길 수 없는 악마의 존재성을 알리고 있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태리에서 공부하면서 유구한 전통이 있으며 당시에도 유행하고 있던 신낭만주의에 심취하면서 희랍 로마의 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육체미를 바탕으로 많은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과 종교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는 경건한 신자로서 예수님에 대한 많은 성화 특히, 수난 전날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하시는 예수님, 빌라도 앞에서 심판 받으시는 예수님 등 여러 감동적인 성화도 남겼다.
작가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천사로서 하느님의 뜻을 어겨 낙원에서 추방된 타락 천사의 모습을 흉측한 모습으로 표현하기 보다 그가 천사였을 때 가졌던 아름다운 모습에 하느님의 뜻을 어긴 악성의 모습을 눈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전통적인 악마 표현의 흉측성에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었다.
아름다운 인간상을 그리기에 몰두하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가 이런 악마상을 제작하게 된 것은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서 영국의 시인 밀턴의 작품 실낙원(Lost paradise)에 심취하면서 인간 사회에 확실히 존재하는 악마성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선 천사의 존재성만 아니라 악마의 존재성에도 눈떠야 인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확신에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미끈한 외모는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에서 표현한 인물들의 모습을 닮은 너무도 세련되고 우아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어서 타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태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작품이기에 미학적 차원에서 가장 균형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견해를 이 작품은 가장 완벽히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천사는 자신의 악행에 의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황당한 상태의 감회를 느끼는 순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눈빛 하나로 너무나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눈을 통해 타락 천사가 느끼는 어두운 마음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먼저 하늘을 가리고 있다. 얼마 전 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던 시절의 동료들이 있는 하늘을 보기가 거북해서 가리고 있다. 그가 살아왔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천국이 아닌 갖은 악행의 범죄가 우글대는 쓰레기통과 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에선 현세의 고통과 수치에서 벗어나고픈 심한 반항과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 그는 자기 업보로 천국에서 추방되어 땅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한 인간 눈의 모습 하나에서 그 인생 전체의 고통과 아픔을 이렇게 묘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우리 격언에 아주 불편한 처지를 말할 때 “바늘 방석에 앉았다”고 하는데 작가는 바로 타락천사의 심정을 이런 눈빛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천사의 날개 역시 생명이 없는 색깔로 드러나고 있다. 날개는 천사에 있어 하느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에 천사의 여권과 같은 상징이나, 여기 천사의 날개는 퇴락한 어두운 색깔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천사의 타락한 처지를 상징하고 있다.
성서는 타락 천사의 서글픈 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너무도 심정을 바로 표현한 것이다.
“어찌하다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네가! 민족들을 쳐부수던 네가 땅으로 내동댕이쳐지다니. 너는 네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지.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져야지.’”
(이사 14,12-14)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범죄나 죄악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으나 오늘 만큼 범죄의 양상이 더 다양하고 사악해지면서 나날의 삶에서 이상한 인격의 인간들을 피할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고, 악질과 악마의 기억을 일깨우기에 일상에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때도 없었다.
사회의 발전은 범죄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간 관계를 자주 대하게 되면서 악이나 악마에 대한 문제로 생각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불교의 법당 탱화나 교회 미술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흉칙한 악마가 아닌 영국 작가인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에 등장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라는 멀정하게 보이는 인간 안에 있는 신사와 악마의 모습의 인간 상을 대해야 할 때가 많다.
종교인만이 아니라 여러 차원의 선의의 인간들이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인간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범죄나 악한 인간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만행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의 활동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질 만큼 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사회 지도층의 인사 만이 아닌 어떨때는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중에도 도저히 악마의 작용으로 밖에 여겨질 수 없는 그런 악행을 보면서 망연자실 할 때가 있다.
이제 악마는 온 세상 전체를 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루치펠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인상을 주는 현실에서 인간 삶의 아름다움에 몰두했던, 작가 한마디로 선과 아름다움의 전문가인 작가가 악의 화신인 악마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 사회 현실에서 종교의 기본인 악을 피하자는 메세지의 전달 차원을 넘어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악마의 존재를 피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어떤 의미던 세상의 악에서 인간을 구원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의 역할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악성 이해와 악마의 구분의 지혜를 아울러 주고 있다는 면에서 미학적인 차원 이상의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