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 감사의 내용을 보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꼭 하느님께서 편을 갈라서
누구에게는 보여주시고
누구에게는 감추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복음의 다른 부분을 보면
오늘의 말씀이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숨어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모든 사람이 초대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드러내 보이는 쪽보다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고
철부지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알아듣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드러내 보이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동사를 사용해서
아버지를 드러낸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구절을 이어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시는데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시지만
철부지들만 받아들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하느님이 필요하지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부족함을
가난으로 살아갑니다.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그 부족함을 늘 직면하는 삶입니다.
부족함을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부족함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에
프란치스코는 소유하지 않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것도 갖고 싶지만
우리는 정신적인 것도 갖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의 관심, 칭찬, 인정 등을 받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록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들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정신적인 것에서도
부족함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느님을
더 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