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가는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갔다.'
이 표현은 오늘 복음의 앞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앞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한 이야기인데
시메온과 한나 이야기가 나오고
이어서 복음사가는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이와 달리 세례자 요한 이야기의 끝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세 가지를 비교해보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 '지혜와 총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지혜롭다는 자들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감추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혜를 경계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인간의 지혜는
하느님을 거슬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기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루카 복음사가는
지혜를 이야기하면서 두 번에 걸쳐
총애와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 단어는 1차적으로 은총이라는 뜻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에 나옵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서
은총을 주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 하느님께서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성을 이야기한다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없겠지만
예수님의 지혜가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복음사가가 덧붙인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람들의 축복을 통해 이루어짐을
복음사가는 드러냅니다.
첫 번째에서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총애만 이야기하는데
두 번째에서는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이야기합니다.
은총은 하느님에게서만 온다고 할 때
사람들의 은총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축복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총애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에 축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축복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더 잘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와 은총으로
성장해 나가는 삶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축복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