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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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루카 10,30).
예리코는 이 세상의 표상이다
죄를 지은 아담은 낙원, 곧 “천상 예루살렘”(히브 12,22)에서 쫓겨나(창세 3,23 참조) 이곳으로 추락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장소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행실이 바뀌어 그의 본성이 유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영원한 지복을 누리던 아담이 아니었습니다. 세속의 죄로 돌아서자 그는 강도들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하늘의 명령에서 멀어져 죄에 쉽게 넘어가는 존재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담은 강도들 가운데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강도들이 누구입니까? 가끔 빛의 천사들로 위장하지만(2코린 11,14 참조) 이내 본색이 탄로 나는 밤과 어둠의 천사들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그자들은 먼저 우리가 입은 영적 은총의 옷을 훔쳐 가고 그 뒤로도 계속 우리 몸에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잘 지킨다면, 강도의 공격에 끄덕없을 것입니다. 아담처럼 먼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보호의 손길을 잃고, 믿음의 외투를 빼앗기지(창세 3,7 참조)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는 길을 가던 사마리아인이 상처를 싸매 주지 않았더라면 인류 전체가 타락하고 말았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본 설교에서는 둘째 오솔길, 곧 버림과 그대로 둠의 길을 걸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간략하게 제시된다. 우리는 버림과 그대로 둠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실재를 보는 우리의 관점이 종종 만물의 전체성과 거룩함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버림과 그대로 둠의 길을 걸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이 광활한 어둠이자 알 수 없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 두 여정은 같은 여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는 만큼 하느님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만큼 하느님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마주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인 하느님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엑카르트는 우리 모두가 일상적인 하느님 경험에 참여하기를 바라지만,그러한 경험 속에 긴장이 도사리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창조계는 선하다. 창조계는 하느님처럼 선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신적인 사랑을 지녔더라면 우리는 하느님과 이제까지 그분이 수행해온 모든 일을 보고 기뻐했을 텐데 피조물은 선하지만, 종종 영혼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왜 피조물은 영혼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선한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25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10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루카 18-21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1코린 3,1-11
복음 선포자의 역할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