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710 추천 수 1 댓글 3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다른 복음 곧

자기가 전해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해 나무랍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당시 갈라티아 신자들 뿐 아니라

오늘 이곳의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른 복음을 따라 살고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복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이고,

이웃사랑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그제 얘기입니다.

비행기를 탔더니 제 좌석은 가운데 좌석이었습니다.

열세 시간 삼십 분을 가야 하는데 가운데 좌석이라니!

 

게다가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서양인으로 몸무게가 200kg이 넘는 거구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로 치면 1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데

이런 사람이 제 이웃이라니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옛날 초등학교 때 책상을 같이 쓰는 옆 친구와 가운데 금을 긋고는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넘어오면 싸우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제 자리를 넘어오고 침범하는 그런 이웃인 셈입니다.

 

실제로 저는 양쪽 남자들 가운데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였는데

특히 그 거구의 넘치는 엉덩이 살과 허릿살이 제 좌석까지 쳐들어와

저의 살과 맞닿았고 그래서 저는 오는 내내 그의 열기로 인해 무척 더웠습니다.

 

그래서 이 이웃과 만난 나의 오늘은 불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30년 전 미국에 살 때 같이 살던 형제가 생각났습니다.

그 형제도 200kg이 넘었던 형제이고 그래서 살을 빼기 위해 고생하던 형제였지요.

 

그 형제를 생각하며 제 옆의 친구를 생각하니 그가 가엾기 시작했습니다.

그 거구가 비즈니스석에 타지 못하고 제가 타는 좌석에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저의 불운보다 그의 고통이 보이고 가엾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은 대체로 이런 사람입니다.

가까이 있기에 찌르고 상처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아무리 찌르려고 해도 멀기에 찌르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상처를 주려고 해도 주지 않고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의 기준은 거리의 가깝고 멀고가 아니고,

나와 같은 동네 사람이거나 같은 족속이거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거리나 관계 면에서 가깝든 멀든 내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나를 괴롭게도 하지만 그도 괴로움 중에 있는 사람이

우리가 흔히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해 주며

되돌려 받을 것을 알고 꾸어주는 것은,

세리들도 죄인들도 잘하는 사랑이라고,

그러므로 죄인에게나 의인에게 똑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야 당신이 가르치신 사랑이라고 주님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님의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

곧 사람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율법의 가르침이 복음이라며

율법주의로 되돌아가려는 무리가 갈라티아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듯 다른 복음은 없고,

오늘 주님 말씀하신 사랑 복음밖에 없음을 확고히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루비 2024.10.07 03:34:31
    신부님 잘 다녀오셨군요.
    오랫만에 강론글 너무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영육간에 더욱 강건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평화와 선.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2024.10.07 02:00:11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7Oct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민족 사람들과 이방인을 구분했습니다.  단순하게 다르게 생각한 것을 넘어  이방인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
    Date2024.10.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6
    Read More
  2. No Image 07Oct

    연중 27주 월요일-다른 복음은 없다!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다른 복음 곧 자기가 전해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해 나무랍니다.   그런데 이것...
    Date2024.10.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710
    Read More
  3. No Image 06Oct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Date2024.10.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80
    Read More
  4. No Image 06Oct

    연중 제27주일

     바리사이들이 묻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바리사이들의 질문에서 주어는  항상 남편입니다.  남성 중심 사회였기에  그것은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의 두 구절을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에게 모세...
    Date2024.10.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201
    Read More
  5. No Image 05Oct

    10월 6일 연중 27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0월 6일 연중 27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
    Date2024.10.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96
    Read More
  6. No Image 05Oct

    성모 신심 미사

     복음사가는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갔다.'  이 표현은 오늘 복음의 앞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앞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한 이야기인데  시메온과 ...
    Date2024.10.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84
    Read More
  7. No Image 04Oct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Date2024.10.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9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364 Next ›
/ 136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