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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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39-42)
마르타가 지극히 거룩하신 분과 그분의 성도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다
주님께서는 육신을 지니셨습니다. 황송하게도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그래서 황송하게도 굶주리고 목도 마르셨지요. 굶주리고 목마르셨기에, 당신께서 몸소 풍요롭게 해 주신 이들이 만든 음식을 잡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당신께 음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려고 스스로 낮추시어 손님이 되신 것입니다.
마르타는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대접하느라 바빴습니다. 갚은 애정으로,지극히 거룩하신 분과 그분의 성도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가고 마는 일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이 언제나
계속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순결하고 완전한 선(善)에 몰두할 때, 시중드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오로지 하느님의 선만을 바란다면, 나의 이러한 뜻은 더없이 고귀해질 것이고, 그러면 성령께서 곧바로 흘러 나올 것입니다. 선한 모든 것은 흘러 넘치는 하느님의 선에서 흘러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은 그러한 일치 속에서만 내게 단맛이 납니다. 그러한 일치 속에서 하느님의 평화는 모든 피조물의 선을 위해 존재합니다. 거기에서만 이러한 선과 존재와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이 쉼을 얻습니다. 이때의 쉼은 마치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피조물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이냐다. “여러분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뒤틀린 방식으로 사물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25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10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루카 18-21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예수님, 헤로데처럼 당신을 두려워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당신을 흠숭합니다. 마리아님, 아드님을 구하시려고 요셉과 함께 이집트로 피난가신 그 순간을 찬미합니다.
예수님, 그들의 죄와 악의에 찬 말과 행위 그리고 사악한 행동으로 당신을 죽이거나 자신과 주변 사람 안에서 당신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이의 이름으로 당신을 홈숭하나이다.
예수님, 사람들과 하나 되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소서. 그들은 다른 이들이 당신의 평화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면서 평화롭게 살며 두려움에서 해방되리다.
예수님, 그들과 다른 이들, 특히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당신을 홈숭합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천상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 성탄절에 그들이 보호받으며 안전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늘 당신이 평화와 기쁨을 주러 오셨다는 것을 느끼게 하소서.(가정불화로 방황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271)
-성시간, 슬라브코 바르바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