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있었다.”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 28주일은 지혜로운 사람이 주제인데
지혜란 행복과 불행에 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행불행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자신을 불행케 하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불행케 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돈과 재물을 예로 들고,
어리석은 사람의 대표로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는 부자를 예로 듭니다.
부자는 이웃에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웃을 위해 자기 것을 나눠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사랑보다 소유에 더 집착합니다.
사람과 사랑보다 재물과 소유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의 한 원인일 뿐이고,
가장 크고 결정적인 불행의 원인은 아닙니다.
재물 때문에 사람과 사랑을 놓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것 곧 하느님과 영원을 놓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람을 잃고 사랑을 잃는 것도
큰 어리석음이고 큰 불행이지만 사람보다 하느님을 잃고,
그래서 자기의 영원을 잃는 것보다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부자의 행동을 한번 봅시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달려왔고 무릎을 꿇었으며 질문을 합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해 그렇게 열렬한 원의를 가지고 달려와
무릎까지 꿇으며 알고 싶어 했던 비결을 주님께서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자기 소유를 다 포기하라는 것이었고 나누라는 것이었습니다.
추측하건대 자기 소유를 자식에게 주라고 했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이 아닌 남에게 나눠주라고 했으니 포기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주님 추종(Sequela Christi)’의 실패입니다.
이 주님 추종은 이 세상에서 자기 포기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겁니다.
부자는 두 가지 다
‘이 세상의 자기 포기’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를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는 재물을 포기하지 못한 것뿐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생각한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히 소유하면 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나의 건강 하나도 잃지 않고,
지금의 나의 재산 하나도 잃지 않고,
지금의 부모 형제 자녀 하나도 잃지 않고
진시황처럼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것을 부자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도 이런 부자가 아닐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