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방탕, 이기심....
분파, 질투, 만취,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오늘 갈라티아서는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면 육의 행실들이 골고루 얼마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얼마간 제게 다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께서 불행하다고 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추한 모습 곧 육에 이끌리는 모습을 얼마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입니까?
육에 이끌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양다리 걸치기입니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영적 식별이 필요하고,
거듭거듭 정신을 차리는 일깨움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라고
사도 바오로가 얘기하듯 우리의 육을 욕정과 욕망과 함께 확실하게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늘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을 십자가 영원히 못 박지 않은/못한 사람은
매 순간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지 않으면
세상 것들에 정신이 팔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정신/Spirit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정신은 들락날락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신을 차리면 정신이 내 안에 있기도 하지만
무엇에 정신이 나가거나 팔리면 정신이 내 안에 없기도 합니다.
꽃을 보겠습니다.
꽃은 아름답고 전혀 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꽃에 취하고 빠집니다.
그러는 순간 하느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고
꽃과 반대되는 추한 것들은 보기 싫습니다.
그런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꽃만 찾아가고
성당에도 가지 않고 병든 노모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는 꽃을 볼 때 즉시
하느님을 같이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꽃이 예쁘게 피었네!’ 하고 말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예쁜 꽃을 주셨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음식도 유익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네! 하며 즐기기만 하면
그 순간, 우리는 식도락가로서 식도락을 즐길 뿐이고,
음식은 양식이 되지 못하며 식사는 성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깨어있으면
음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은총이요,
우리를 살리는 영적 양식이며 성사가 되겠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였다면
거듭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다시 정신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