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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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성경의 불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성도들의 가슴을 뚫고 날아다니며 속된 것을 태우고 순수한 것을 단련시키는 불타는 날개를 가졌지요. 사랑은 그 불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듭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불을 세상에 지르셨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밝게 빛나고 신심이 불타올랐지요. 사랑은 환해졌고 정의는 찬란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클레오파스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하고 증언했듯이, 주님께서는 이 불로 사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불의 날개는 성경의 불꽃을 말합니다.
-암브로시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설교 12
하느님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기
정신과 영을 새롭게 하여(에폐 4,23).
이제 이것을 주목하십시오. 하느님은 무명씨입니다. 하느님에 관해 무언가를 알거나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이교도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일원인(第-原因)은 모든 표현과 이해를 넘어선다.” 하느님은 좋은 분이다라고 내가 말한다면, 나는 잘못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하느님은 좋은 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은 좋은 분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결국 내가 하느님보다 더 좋은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더 좋게 될 수 있고, 더 좋은 것은 가장 좋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좋은 분이 아니기에 더 좋은 분이 될 수 없고, 더 좋은 분이 아니기에 가장 좋은 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이 세 마디 - 좋은, 더 좋은, 가장 좋은 - 는 하느님의 실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내가 하느님은 지혜로운 분이라고 말하면, 그것도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느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은 존재라고 말하면, 그것도 틀린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존재를 넘어서는 존재, 존재 너머에 계신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이련 이유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은 내적 풍요의 지혜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266)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2코린 1-7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고통당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소녀는 루치아에게 말했다.
“나는 머잖아 천국으로 가지만 너는 이 세상에 남아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 특히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을 일으킬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거야.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하느님께서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서 전인류 위에 은총을 내리신다는 것, 모든 사람은 망설이지 말고 성모님께 청원할 것, 예수 성심은 성모님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과 더불어 공경받고 싶어하신다는 것, 특히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평화의 열쇠를 맡기셨기에 온 인류는 성모님께 평화를 간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해. 내가 내 마음속에 느끼는 예수님의 성심과 성모 마리아의 성심께 대한 사랑의 아픔을 사람들 마음에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럽고 좋을까! "
라고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정말 정말 좋아. 두 분께 몇 번이고 몇백 번이고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되풀이해도 도무지 싫지 않고 그저 좋기만 해."
진정 사랑으로 히야친타는 어렵고 무서운 병고를 그 얼마나 참을성 있게 견디어 냈는지 모른다. 그녀의 단 하나의 낙은 약간만이라도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을 때 옆방에 누워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가 보는 것과 그녀의 마음의 벗이요 힘찬 도움이 되어 주는 루치아의 방문이었다.
루치아는 학교 시간 이외에는 앓고 있는 두 벗을 상대하며 지냈는데 히야친타를 기쁘게 하려면 늘 프란치스코의 방에 먼저 들어가야만 했다.
“오빠 방에 먼저 가 줘. 나는 혼자 있는 쓸쓸한 허전함을 희생으로 바치고싶으니까.”
루치아가 소녀 곁으로 오면,
“이젠 아무 데도 가지 마. 나는 너를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네가 가버리면 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거든. 이제 난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 버렸어.”(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