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각자가 자기 살 궁리만 하고,
각자가 자기 돈 벌 궁리만 하고,
각자가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요?
공동체는 망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개인은 망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요?
자기 살 궁리만 하는데 자기는 잘 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공멸입니다.
그런데 왜 각자 살 궁리만 합니까?
공멸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인생은 각자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은 마치 한배를 타고 가면서 각자도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각자가 사는 것을 꾀한다는 뜻이지요.
왜냐면 한배를 탔는데도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인 것 같지만,
그리스도라는 한 몸을 이루는 각각의 지체들이라고.
다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고,
공동체 의식 곧 한 몸 의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며,
우리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기에 공생하려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고 각자도생하다가 공멸하게 될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공동체 의식, 한 몸 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외롭고 모두 서서히 혼자 죽어갑니다.
독거노인만 고독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하고,
혼자 살 수 있다고 하는 혼술 혼밥의 혼족들이 불쌍하고,
그들의 뻔한 불행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한다면
나 혼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살아서는 안 되고,
나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살아서도 안 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살고,
같이 그리스도라는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지 않으면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되리라는 것이
요한복음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이고 오늘 바오로 서간의 가르침입니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혼자 있는 것이 한순간 자유롭고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고 편한 것이 진정 행복이고 생명보다 좋다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저 캄캄한 우주에 혼자 떠돌아다닌다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혼자 떠돌아다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까?
자유롭고 편하기만 한 것이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입니까?
이것을 성찰하며 자문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