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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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7-9)
비전한 자들을 고쳐 주려고 내려오신 예수님
모든 것을 삼가 눈여겨보십시오 그분은 사도들과는 올라가시고 군중에게는 내려오십니다. 낮은 곳에서가 아니면 군중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보겠습니까? 군중은 그분을 따라서 높은 곳으로 향하지 않고 장엄한 장소에도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어 거기서 약한 자들을 만나십시다. 약한 자들은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니까요. 마태오가 병자가 낮은 곳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알려 줍니다(마태 8,1-4 참조). 사람은 누구나 먼저 고침을 받고 조금씩 조금씩 덕을 쌓음으로써 산 위로 올라갑니다. 다시 말해, 무모한 행실로부터 돌아서도록 부르시어 맹목의 해를 피하게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상처를 치료하러 내려 오시어, 효과적이고 풍요로운 방식으로, 우리가 당신의 하늘 본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암브로시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설교 12
하느님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기
정신과 영을 새롭게 하여(에폐 4,23).
여러분은 영혼의 고차적인 기능들에도 금가락지를 끼워야 합니다. 영혼의 고차적인 기능들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기능은 기억의 능력이라고 불립니다. 이 기능은 삼위일체 안에서 아버지와 짝을 이룹니다. 여러분은 이 기능에다 보존이라는 이름의 금가락지를 끼워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한 것들, 곧 사물의 영원한 관념들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기능은 지성을 이룹니다. 여러분은 이 기능에다 지식이라는 이름의 가락지를 끼워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언제나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미지 - 표상 - 를 여의고, 매개자를 여의고, 닮은 것을 여의어야 합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알려면, 내가 하느님이 되고, 하느님이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이 내가 되고, 내가 하느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그분”과 이 “나”가 하나의 “존재”를 공유하고, 이 “존재” 안에서 영원토록 한 가지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그분”과 이 “나’, 곧 하느님과 영혼은 영원토록 한 가지 일을 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여기를 떠올리거나 단 하나의 지금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영원한 행위를 중요시하지 않는 순간, 이 “나’와 이 “그분”은 결코 무언가를 함께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가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268)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4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2코린 8-13장 / 1테살 1-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2코린 13,1-13
마지막 경고와 인사
나는 이제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 갑니다. “모든 일은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합니다.”
내가 두 번째로 방문하였을 때 전에 죄를 지은 이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이미 경고한 것처럼, 지금 여러분과 떨어져 있으면서 다시 경고합니다. 내가 이번에 다시 가면 그냥 너그럽게 넘겨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여러분이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대하실 때에 약하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 가운데에서 힘을 떨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 계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지만, 여러분을 대할 때에는 하느님의 힘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 안에 살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 스스로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실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어떠한 악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합격자임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격자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선을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이든지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우리는 그것으로 기뻐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자신을 바로잡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곁에 있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권위를 가지고 여러분을 준엄하게 다룰 필요가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권위는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