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겨자씨의 비유를 읽자니
전에 저희 식당에 찾아오신 할아버지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연세도 구순 가까이 되어 보였고 행색도 초라한 할아버지였는데
식사하신 뒤 보답하는 마음으로 무슨 씨앗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차로 달여 먹으면 몸에 아주 좋은 것이니 꼭 씨를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제가 미심쩍어하는 태도를 보이며 선뜻 감사히 받지 않으니
그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제발 믿으라고 그리고 받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호의와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받긴 하였지만
저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오늘에서야 그것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대비하면
저는 그 씨를 제 정원에 심지 않은 그 ‘어떤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지금까지 씨를 한 번도 심지 않았습니다.
모종이나 묘목을 사서 심은 적은 많았어도 씨는 심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왜 그런 사람일까요?
하느님 나라의 씨도 이렇게 심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래도 저는 여간해서는 잘 믿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은 효능이 전혀 없다고 생각진 않지만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그리 큰 믿음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은 아마 제가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사람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말을 믿을 텐데 제가 건강하기 때문이고,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 않겠다는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럴 수 있지만 문제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불신의 관성이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까지 불신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어떻게 되느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 같다고 오늘 주님도 말씀하시잖습니까?
보잘것없어 보이는 거기에도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가능성 없다고 믿는 거기에도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은 있을 수 있잖습니까?
씨앗이란 겨자씨만이 아니라 모두가 작고,
작지만 거기에 엄청난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씨를 심어도 나지 않을 수 있고,
자라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 씨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을 믿고 씨를 내 정원에 심습니다.
하느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도 무엇을 하실 수 있고,
우리 눈엔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하느님께는 가능할 수 있지요.
Nothing is impossible to God!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능한 하느님을 믿고
오늘도 우리 정원에 가능성의 씨를 심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