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할 때
보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진 선을 베풀 때
그것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말하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표현된 행복은
예수님께서 참행복을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데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보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때만큼이나
행복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베푼 선을 그가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보답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행복은
그것을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베푼 선을 하느님께 돌려받는다면
사람에게 돌려받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돌려받으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느님께 보답을 받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보답해 주신다고 했을 때는
내가 베푼 것 이상으로 받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10개를 주었을 때
하느님께 10개 이상, 예를 들면 100개를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하느님의 보상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
하느님 자체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그분과 함께 사는 기쁨
즉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선을 베풀면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을 베풀 때
그 선은 이미
하느님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미 하느님과 관계가 맺어져 있고
선을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그 관계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고
나눔을 통해
내가 하느님의 나라에 있음이 드러납니다.
오늘 하루도 선의 나눔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