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부자들과 빈곤한 과부를 비교하십니다.
부자들은 풍부한 데에서 얼마씩을 봉헌했지만
그 과부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봉헌했습니다.
부자들의 모습이 예물 봉헌이었다면
가난한 과부의 모습은 자기 생명의 봉헌이었습니다.
부자들은 아마 율법이 말하는 규정에 따라
가진 것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쳤을 것입니다.
이 모습도 율법을 지키려는 관점에서는
훌륭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하느님께서 주신 복이기에
일정 부분을 돌려드리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의 모습은
감사 표시를 넘어
하느님과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물론 부자들이 봉헌하는 것에서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주셨고
그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면서
그 관계가 유지됩니다.
그러나 과부는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면서
그녀가 의지할 곳은 이제
하느님 밖에 없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서의 거의 끝부분에 나옵니다.
물론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이고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와 계신 상황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관점에서
이 말씀을 들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방법은
각자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그 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내가 놓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의지하게 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지를 통해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