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관리 한 사람이 아들의 치유를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표징은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도
왕실 관리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고
나타납니다.
표징 때문에 믿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표징은
믿음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거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이 없었다면
왕실 관리는 가지 못했을 것이고
아들이 살아난 것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의문은
표징에서 믿음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이 표징을 일으키는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표징이 일어나기 전에
왕실 관리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믿었다는 표현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그의 믿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복음 마지막에 그가 믿게 되었다는 것은
믿음의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표징은 그의 믿음을 성장시켰습니다.
물론 표징을 통해
그의 집안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을 보면
표징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새롭게 생긴 믿음에 앞서
그에게 성장한 믿음이 먼저 이야기됩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가 집안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기에
그들은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믿음이 그들의 믿음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믿음이 전혀 없다고 볼 수도
그렇다고 믿음이 강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믿음이 없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미약한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
아니 거부하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온전한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도 성장할 것입니다.